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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9일 (주일) 하나님과 의사 소통!


    이번주 중에 비가 약간 오는 가운데, 몇 분들과 모임을 가지고 회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대화를 하는데 왠지 서로가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한국말로 듣고 말하는데, 왜 이해하기가 힘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말이 잘 안 통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과 존재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입니다. ‘communicate’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하다’, ‘상호 의사소통을 하다’ 뜻입니다. ‘전달, 연락, 통신, 서신 왕래, 다른 누군가와의 교제, 의사소통’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은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만나고 살아가고 있나?”라는 도전이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때는 분명한 상대방이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그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신앙의 상대방은 누구입니까? 살아 계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과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만남, 그것이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상대방이 분명하지 않고, 또 그 상대방과의 만남이 실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신앙을 뭐라고 부르는가 하면 “미신” 혹은 “우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음성을듣고, 그 분의 뜻과 명령을 아는 것이 우리가 받는것이고, 또 역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형편을 살피시사 채워주시는 것, 이런 소통이 신앙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만남이 필요한 때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이 상호소통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묻습니다: “신앙의 상대방이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만나고 있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 소통을 추구하고 사는데, 우리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 등이 왜 이렇게 예외적이고 지극히 드문 일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즉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 하셨는데, 그 구체적인 증거를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 찾고 고백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저런 질문이 저의 마음에 자꾸 듭니다. 

   이 서신을 읽은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신가요? 오늘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하나님과 소통하시면서 살아가십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여러 환경에서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고백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믿음과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기쁨과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려분의 목사 이석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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